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벤예란 에릭손 (문단 편집) === 잉글랜드 대표팀 시절 === ||[[파일:external/ecae1bd3ca22aa0c3c192f24f766e2f9ac6d69d017576514c2bcb8fdc859fd7d.jpg|width=300]]|| 에릭손이 부임할 당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황은 실로 최악이었다.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고 [[UEFA 유로 1996|1996년 유로컵]]에서 4강에 진출했던 잉글랜드는[* 다만, 이 기간 중에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이 흠이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월드컵]]에선 16강에 그쳤고,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월드컵]] 지역예선 첫 경기부터 독일에게 1:0으로 패한다.[* 참고로 이 경기는 '''홈 경기'''였다. 게다가 구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마지막 경기였다.]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140년 대표팀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 강수를 두었다.[* 1956~58년 스웨덴은 잉글랜드인 [[조지 레이너]] 감독을 선임했는데 그와 정 반대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영국]] 축구팬들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국 출신 감독들의 전유물이었던 대표팀 감독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것에 불쾌감을 품은 것과, 라치오에서 막판에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사람이 대표팀을 잘 이끌 것 같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뜬금포지만, 우리나라도 1990년대 초, 고문 및 올림픽 축구 감독으로 임명된 [[데트마어 크라머]]를 받아 들이면서 외국인 감독에 대한 냉대를 보여주었고 이에 탄력받은 언론들도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어서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받아들이는데 많은 잡음이 들렸다. 또한 후에 거론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도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되며 한국 축구에 약간은 [[영 좋지 않은]] [[흑역사]]를 남겼다. 물론 팬과 국내 축구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들이라는 점이 차이점이긴 하지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지 않았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갔다는 점을 보면은 어느정도 비슷한 예로 꼽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에릭손은 부임하자마자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비판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는 2001년 3월 1일 버밍엄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닉 밤비, 에밀 헤스키, 우고 에이오구의 연속골을 앞세워 3:0 완승을 거두었다. 이후 잉글랜드는 에릭손의 지휘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여 5연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2001년 9월 2일, 에릭손은 뮌헨에서 열린 [[독일]]과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마이클 오언]]의 해트트릭을 앞세워 독일을 5:1로 대파했다. 적지에서 거둔 완승에, 영국 전역이 들썩였다. ‘텔레그래프’지는 ‘정말 잉글랜드가 독일을 꺾었는가’ ‘마이클 오언이 정말 해트트릭을 기록했는가’라는 의문문으로 제목을 뽑아 승리에 도취된 분위기를 전했다. 또 ‘인디펜던트’지는 ‘영국 스포츠의 국제대회 역사상 가장 믿어지지 않는 승리’라며 축구대표팀을 칭송했다. 일각에서는 잉글랜드가 상승세를 살려 2002 월드컵 진출권을 확보할 경우 에릭손에게 기사 작위를 주고 ‘스벤 경’으로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듯 에릭손의 지휘하에 몰라보게 달라진 잉글랜드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스웨덴]], [[아르헨티나]], 그리고 [[나이지리아]]와 함께 F조에 소속되었다. 이 조는 세간에서 '[[죽음의 조/축구|죽음의 조]]'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고, 영국 축구 팬들은 잉글랜드가 16강에 올라갈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봤다. 게다가 에릭손의 선수 선발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에릭손은 선수의 도덕성을 국가대표 발탁 기준에 넣었다. 이 규정으로 인해 영국 최고의 센터백으로 각광받고 있던 [[조나단 우드게이트]]는 아시아계 학생을 폭행한 혐의가 인정돼 100시간의 사회봉사 활동을 이행했으나, 대표팀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는 에릭손 감독의 반대에 부딪혀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이에 대해 고든 테일러 프로축구선수협의회 사무총장은 "축구팀을 경기 외적인 이유로 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선수의 과거 행위가 대표선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며 "특히 우드게이트는 이미 법에 의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또다른 징계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게 얼마나 개소리냐 하면 애초에 100시간 사회봉사 활동가지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피해자 광대뼈, 다리, 코뼈가 부러졌는데 모두 백인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이 5일만에 평결해서 고작 100시간 사회봉사 활동으로 끝난거다. 그걸 이미 처벌을 받았다고 하는건 어이없는 발상. [[https://www.theguardian.com/uk/2001/dec/16/football.race|링크]]. 심지어 그의 더러운 [[사생활]]이 폭로되기도 했다. 에릭손은 이 시기 낸시 델올리오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출신의 여 변호사와 동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 시기 올리카 존슨이라는 미모의 방송진행자와 새로 사귀었다는 것이었다. 이 염문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델 올리오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불쾌감을 나타냈고, 에릭손과 델 올리오와의 관계를 접한 존슨도 “에릭손은 거짓말쟁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염문이 확산되자 에릭손은 “내 사생활이 잉글랜드 대표팀의 월드컵 준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에릭손은 나름대로 월드컵에서 선전했다. 그는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고,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했으며,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리하여 잉글랜드는 1승 2무를 기록하며 스웨덴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고, 16강전 상대인 덴마크를 3:0으로 제압하며 8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전에선 브라질과 만나 [[호나우지뉴]]가 퇴장당하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2:1로 패하고 말았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04E82E300000044D-605_634x402.jpg]] 2002 월드컵이 끝난 뒤, 에릭손은 [[UEFA 유로 2004|유로 2004]] 예선전에 착수했다. 그는 첫번째 상대인 [[슬로바키아]]를 격파했지만, [[북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와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호주]]와의 친선경기에서 패한 뒤에 팬들에게 야유 세례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이후 5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었고 조 1위를 기록하며 유로 본선에 진출했다. 유로 2004 본선 첫 상대는 [[프랑스]]였다. 잉글랜드는 90분때까지 프랑스를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그런데 추가 시간에 지단이 2골을 몰아넣는 바람에 2:1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다행히 잉글랜드는 이 충격에서 빨리 회복되어 [[스위스]]를 3:0으로 제압했으며 [[크로아티아]]를 4:2로 제압할 수 있었다. 8강전 상대는 [[포르투갈]]. 마이클 오언이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지만 엘데르 포스티가의 동점골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 [[솔 캠벨]]이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인해 무효가 되었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지면서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유로 대회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둔 뒤, 에릭손은 잉글랜드 언론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120분 내내 부진한 베컴을 교체하지 않고 계속 끌고 가서 경기를 망친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급기야 에릭손은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한 여비서와 외도를 한 사실까지 드러나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영국축구협회는 “에릭손이 협회측의 패리아 앨럼(38)이라는 방글라데시계 영국인 여비서와 오랜기간 연인관계였다”고 폭로했다. 협회측은 “지난주 초 우리는 에릭손과 성관계를 가진 것이 없다는 앨럼의 말만 믿고 이 사실을 부정했지만 앨럼이 친구에게 에릭손과의 관계를 털어놓는 내용이 담긴 e-메일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이 [[스캔들]]로 인해 하차 위기에 직면하자, 에릭손은 "축구협회가 오도된 정보로 사건을 전개시키고 있다"며 "아직 잉글랜드 축구협회에 이 일과 관련해 어떠한 시인도 부인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밝혔다. 영국 축구 협회 전무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에릭손을 지지할 뜻을 천명했다. 결국 FA는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에릭손이 2006 월드컵까지 대표팀 감독을 맡기로 결정했다. 2005년 9월 7일, 에릭손이 이끄는 [[잉글랜드]]는 [[북아일랜드]]에게 1:0으로 패했다. 이 패배는 1972년 이후 33년만의 일이었다. 이 패배로 인해 팬들로부터 지탄을 받았고, BBC 축구 평론가들은 그가 카리스마가 떨어지고 전술적으로 별 달리 특색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에릭손은 이후 [[오스트리아]]를 1:0으로 격파하고 [[폴란드]]를 2:1로 격파하며 2006 월드컵 진출을 이끌어냈다. 2006년 초, 에릭손은 초대형 사고를 친다. 영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 잡지 중 하나인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위장취재에 고스란히 낚인 것. 이 잡지사와 소속된 아랍계 기자가 아랍인 왕족 재벌로 위장해서 프리미어 리그 팀 인수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위장[* 기자 홀로 준비한 게 아니라 잡지사와 같이 하다보니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고급 보트까지 빌려 준비하고 최고급 술이라든지 초청을 위한 여러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하고, 에릭손을 두바이로 부른 것이다. 에릭손은 즉시 두바이로 날아갔고, 초청 받은 곳이 초호화 요트다 보니 에릭손은 할 말 못 할 말 다하게 된다. * 일단 자기가 국대감독이었지만 돈만 많이 주면 월드컵 이후 그만두고, 클럽팀 감독을 하겠다고 한 것이 하나. 국대 감독을 하면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 클럽을 사려고 한다면 아스톤 빌라를 사라고 하면서, 회장도 노령이고 지병도 있으니까 싸게 살 수 있다고 컨설팅까지 한 것이 둘. 가끔 아랍계 부호로 위장한 기자가 아스톤 빌라를 살 생각이라고 하고 불렀다는 식의 이야기도 가끔 도는데, 에릭손이 팀을 특정했다. 팀 전력도 적당하고 싸게 살 수 있다고. 당연히 이 사실이 알려진 뒤에 아스톤 빌라 구단주가 발끈했다. * 만일 자기가 감독이 되면 [[데이비드 베컴]]은 전화 한 통이면 불러올 수 있고, 뉴캐슬에서 뛰고 있던 [[마이클 오웬]]은 평소에 자기에게 돈에 팔려간 것이라서 팀에 머무는 것이 마음에 안든다고 했다고 기존 팀과 선수들 뒤흔들어 놓은 것이 셋. 이 때문에 이 기사 나오자마자 뉴캐슬이 반박성명을 냈다. * 마지막으로 자기가 국가대표 감독이면서, 데이비드 베컴은 소속팀에서 좌절한 선수이고, [[리오 퍼디난드]]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수비수이고, [[웨인 루니]]는 가난한 집 출신에 성격도 더러우니 자기 아버지 따라서 복싱이나 배우는게 나았을 선수이고, [[숀 라이트필립스]]는 실력에 비해서 고평가 되어서 첼시가 헛돈 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 것이 넷이다. 마지막 부분은 한국 언론에서는 선수 이름을 검열해서 내보낸 곳도 많았을 정도였다. 잡지사는 숨겨둔 장비로 사진과 영상까지 찍어서 1면으로 특종이라고 보도했고 투자한 댓가를 확 뽑았다. 이 일을 보도한 잡지는 매진될 정도로 화제가 되어 엄청나게 팔렸고 모든 진상을 이제서야 알게된 에릭손은 노발대발했다. 이 일에 대하여 위장취재라는 방법상의 문제와, 월드컵 전 국가대표 감독을 왜 일부러 건드리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게 반반으로 나뉜 것은 염불보다 잿밥에 더 눈에 먼 저 감독을 그대로 봐야 하느냐라는 것이 타블로이드 잡지 라는 최악의 메신저를 통해서 나왔음에도 어느정도는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에릭손이 낚였다는 것만 알려졌지, 자세한 발언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좀 덜했지만. 언급된 곳마다 모조리 강하게 부정하는 등 난리가 났었던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는 [[더 타임스]]의 다음과 같은 결론일 것이다. >정말 에릭손이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100% 성심성의껏 임하고 있다면 이런 함정에 걸리지도 않았을 거다. 처음부터 두바이 같은 덴 가지도 않았을 거고. 월드컵을 대비하느라 그런 데 쓸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답했겠지. ‘지금은 말고, 월드컵 끝난 이후에 불러주세요. 전 할 일이 있답니다’라고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은 정확하게 똑같은 형태로 한번 낚이는 사례가 등장하게 된다. [[샘 알라다이스]] 문서 참고. ~~2016년의 빅샘건은 알지도 못하겠지만~~ 당장 1월 23일,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에릭손이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 감독직을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에릭손의 뒤를 이을 인물을 물색했고, 2006년 5월 4일에 [[스티브 맥클라렌]]을 월드컵이 끝난 뒤 새 감독으로 선임하겠다고 선언했다. 잉글랜드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월드컵]] B조에 속하여 [[파라과이]], [[트리니다드 토바고]], 스웨덴과 한 조가 되었다. 잉글랜드는 파라과이,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격파하고 '''바이킹 징크스'''라는 [[악연]]으로 얽힌 스웨덴과 2:2 무승부를 거둬 2승 1무에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가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한 것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로 16년 만이었다. 잉글랜드는 16강전에서 경기장이 매우 높은 고도에 위치했기 때문에 고전했지만, [[에콰도르]]를 1: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8강전 상대는 유로 2004 8강전에서 자신들을 탈락시킨 포르투갈이었다. 이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은 부상으로 경기 도중 이탈했고, 웨인 루니는 쓸데없는 반칙을 범해 퇴장을 당하면서 역시 이탈했다. ~~이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는 루니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이후 승부는 승부차기로 넘어갔고 결국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3:1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 에릭손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했다. 에릭손은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가 막 부임할 무렵 잉글랜드는 [[FIFA 랭킹]]이 17위에 그쳤다. 하지만 에릭손이 물러난 2006년 7월, 잉글랜드는 5위를 기록했다. 2006 월드컵 때는 4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1966년 대회]]에서 잉글랜드가 월드컵 우승했던 시기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순위였다. 또한 그는 잉글랜드 감독으로서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그는 단지 세번 패했고 3번의 국제 토너먼트에서 모두 조별 예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부 영국 축구 팬들은 에릭손에 대해 여러 비판을 가했다. 그 중 하나는 베컴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에릭손은 가능한 모든 경기에 베컴을 투입했고 그에게 공격 전개를 이끌어갈 임무를 맡겼다. 팬들은 영국이 베컴에게 계속 의존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베컴 의존증에서 벗어나 [[스티븐 제라드|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램파드]]를 제대로 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후 제라드 - 램파드 라인이 끝내 실패로 돌아가자, 사람들은 에릭손 시기를 비로소 [[재평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